여수 인사이드

거문도서 영국 군함이 2년을 눌러앉았다는 거, 알고 있었능가

🦦
Editor 수달
2026-07-04 · 4분 읽기
수달의 지역 이야기
거문도

여수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더 나가야 닿는 섬, 거문도. 지금은 맑은 바다와 등대, 한적한 풍경으로 낚시꾼과 여행객의 발길을 부르는 조용한 섬이지만, 130년도 더 지난 옛날 이 작은 섬에 영국 해군의 깃발이 올랐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늘은 '거문도'라는 이름이 태어난 사연과, 이 조그만 섬을 두고 저 멀리 유럽의 큰 나라들이 신경전을 벌였던 '거문도 사건'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보려 한다. 이름 하나, 사건 하나에도 이렇게 켜켜이 쌓인 시간이 있다는 게 새삼스럽다.

낯선 국기가 오른 섬

1885년, 조선의 작은 섬 거문도에 영국 해군 함대가 들어와 섬을 점령했다. 이른바 '거문도 사건'이다. 영국은 이 섬을 자기네 방식으로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이라 부르며 해군 기지처럼 사용했는데, 이 이름은 지금도 영문 위키백과에 별도 항목으로 실릴 만큼 국제적으로 제법 잘 알려진 사건이다. 조선 땅, 그것도 한반도 남쪽 끝 작은 섬에 전쟁도 선전포고도 없이 외국 군함이 들어와 몇 년씩이나 머물렀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낯설고 놀랍다. 당시 조선은 개항 이후 여러 나라와 관계를 맺어가던 시기였는데, 그 와중에도 자기 땅에서 벌어지는 일에 강하게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숫자로 보면1885~1887영국 해군이 거문도를 점령했던 기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거문도는 조선 바깥에서 벌어지는 큰 나라들의 힘겨루기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섬 주민들이야 그저 평소처럼 물질을 하고 밭을 갈고 아이를 키우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텐데, 그 일상 위로 낯선 군함과 낯선 말소리, 낯선 깃발이 오갔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묘해진다. 역사책 몇 줄로 남은 사건이지만, 그 몇 줄 속에는 섬사람들이 실제로 겪었을 낯설고 불안한 나날이 함께 담겨 있을 것이다.

영국과 러시아 사이, 조선의 작은 섬

영국이 굳이 이 먼 동쪽 바다의 작은 섬까지 와서 눌러앉은 이유는, 사실 조선 때문이라기보다 러시아 때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영국과 러시아는 세계 곳곳에서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는데, 러시아가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는 것을 막으려던 영국이 거문도의 지리적 위치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조선으로서는 억울하게도, 자기 땅이 남의 나라들 셈법 속 바둑판 위의 돌 하나처럼 다뤄진 셈이다. 조선 정부는 이런 상황에 항의했고, 결국 여러 나라 사이의 외교적 논의를 거쳐 영국 해군은 1887년 거문도에서 물러났다. 이 사건은 지금도 한국 근대외교사를 다루는 교과서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으로, 조선이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하기 어려웠던 근대 초입의 풍경을 잘 보여준다.

작은 섬 하나에 큰 나라들의 지도가 겹쳐졌던 시간, 거문도는 그렇게 조선 근대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 🦦 수달

삼산도에서 거문도로

거문도라는 이름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원래 이 섬은 삼산도 등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거문도 사건 무렵 조선에 왔던 청나라 제독이—흔히 정여창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진다—섬 주민들의 학식과 글솜씨에 크게 감탄해, '큰 문장(文章)의 섬'이라는 뜻을 담아 이름을 바꾸도록 건의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 작은 섬 사람들이 큰 나라의 장수마저 감탄하게 할 만큼 글을 잘 지었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다만 이 이야기 속 인물과 정확한 시점은 전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남아 있어, 딱 떨어지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섬에 오래도록 전해 내려오는 전설로 받아들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래도 이름 하나에 이런 사연이 켜켜이 쌓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거문도를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 수달의 체크리스트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거문도행 배편 시간표를 미리 확인해두기
섬 안에서는 걷는 일정이 많은 편이니 편한 신발을 챙기기
바닷바람이 제법 세게 부는 곳이라 겉옷 하나쯤은 준비해가기
🦦

수달의 팁 · 거문도는 여수항에서 배로 꽤 오래 들어가야 하는 섬이라, 당일치기보다는 하루 묵어가는 일정으로 여유 있게 잡아보는 걸 추천한다. 섬까지 가는 길 자체가, 130여 년 전 이 바다를 오갔을 배들을 상상해보는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
섬 이름 하나에도,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간 시간이 이렇게 쌓여 있당께. 다음에 거문도 가면, 이 섬이 조용히 품고 있는 그 시간도 한 번쯤 떠올려봐 주면 좋겠어.
#거문도#거문도사건#포트해밀턴#여수근대사#삼산도

수달이 골라주는 다음 코스

더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