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향교, 명륜당과 대성전 지붕이 왜 다르게 생겼는지 아세요?
제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수달이에요. 오늘은 여느 때보다 조금 차분한 이야기를 들고 왔어요. 여수 시내 군자동, 조용한 골목 한켠에 자리한 여수향교 이야기예요. 바다 이야기, 먹거리 이야기만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저도 괜히 마음이 가지런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조선시대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교육기관이라고 하니, 오늘은 천천히 그 이야기를 풀어볼게요.
향교라는 게 정확히 뭐였을까요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라고 해요. 지금으로 치면 국립 교육기관이자 동시에 제사를 모시는 사당 역할까지 겸했던 셈이죠.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책 같은 것들을 지원받아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하니, 그 시절 지방에서는 꽤 무게감 있는 자리였을 것 같아요. 여수에도 이런 향교가 있었다는 게, 저는 처음 알았을 때 은근히 신기했어요.
여수향교는 광무 1년, 그러니까 1897년에 대성전과 동재·서재만 갖춘 규모로 처음 지어졌다고 전해져요. 그러다 1934년에 이르러서야 명륜당 같은 교육 공간을 새로 지었다고 하니, 처음부터 지금 모습을 다 갖추고 있었던 건 아니었던 셈이에요. 제사 지내는 공간이 먼저 자리 잡고, 한참 뒤에야 가르치는 공간이 더해졌다는 흐름이 저는 왠지 마음에 남더라고요.
제사를 모시는 마음이 먼저였고, 가르치는 마음은 나중에 더해졌다.
— 🦦 수달명륜당과 대성전, 지붕부터 다르게 생겼어요
향교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만나는 게 명륜당이에요. 학생들이 공부하던 교육 장소였고, 그 옆으로 기숙사 역할을 했던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있대요. 지금이야 교실이니 기숙사니 하는 말이 익숙하지만, 그 옛날에도 공부방과 잠자는 방을 따로 나눠 지어놨다는 게 재미있지 않나요? 명륜당 지붕을 유심히 보시면 옆에서 봤을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하고 있는 걸 확인하실 수 있는데, 이런 지붕을 팔작지붕이라고 부른다고 해요.
명륜당을 지나 내삼문이라는 문을 하나 더 통과하면, 그제야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이 모습을 드러내요.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건물이라고 하니, 향교에서도 가장 무게감 있는 자리라고 할 수 있겠죠. 대성전 지붕은 명륜당과는 또 달라서, 옆면 지붕선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을 그리는 맞배지붕이라고 해요. 같은 향교 안에서도 가르치는 공간과 제사 지내는 공간의 지붕 모양이 이렇게 다르다는 게, 저는 알고 나니 향교를 걸을 때마다 지붕부터 한 번씩 올려다보게 되더라고요.
대성전은 처음에는 앞면 3칸, 옆면 3칸 정도의 아담한 규모였는데, 1949년에 이르러 앞면을 5칸으로 넓혀 다시 지었다고 해요. 조선시대가 끝나고도 한참 뒤에까지 이 공간을 고쳐가며 지켜왔다는 뜻이겠죠. 다만 지금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어요.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지원을 받아 학생들을 실제로 가르치던 곳이었지만, 지금의 여수향교는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고 해요. 한때는 아이들 글 읽는 소리로 가득했을 명륜당이 지금은 조용히 자리만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면, 저는 괜히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더라고요.





수달의 팁 · 문화유산이니 건물이나 위패에 손대지 않도록 주의해주시고, 제사 기능이 남아있는 공간인 만큼 조용히 예의를 갖춰 둘러보시길 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