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서 영국 군함이 2년을 눌러앉았다는 거, 알고 있었능가
여수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더 나가야 닿는 섬, 거문도. 수달도 마음먹고 헤엄쳐야 겨우 닿는 곳인디, 지금은 맑은 바다와 등대, 한적한 풍경으로 낚시꾼과 여행객의 발길을 부르는 조용한 섬이에요. 근데 130년도 더 지난 옛날, 이 작은 섬에 영국 해군의 깃발이 올랐던 시절이 있었다는 거 알고 계셨어요? 오늘은 '거문도'라는 이름이 태어난 사연과, 이 조그만 섬을 두고 저 멀리 유럽의 큰 나라들이 신경전을 벌였던 '거문도 사건' 이야기를 수달이 찬찬히 풀어드릴게요. 이름 하나, 사건 하나에도 이렇게 켜켜이 쌓인 시간이 있다는 게 새삼스럽지 않나요.
낯선 국기가 오른 섬
때는 1885년, 조선의 작은 섬 거문도에 영국 해군 함대가 들어와 섬을 점령해버렸어요. 이른바 '거문도 사건'이에요. 영국은 이 섬을 자기네 방식으로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이라 부르며 해군 기지처럼 썼는데, 이 이름이 지금도 영문 위키백과에 따로 항목이 있을 만큼 국제적으로 꽤 알려진 사건이랍니다.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죠. 조선 땅, 그것도 한반도 남쪽 끝 작은 섬에 전쟁도 선전포고도 없이 외국 군함이 들어와서 몇 년씩이나 눌러앉아 있었다는 거니까요. 당시 조선은 개항 이후 여러 나라와 관계를 맺어가던 시기였는데, 그 와중에도 자기 땅에서 벌어지는 일에 강하게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대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거문도는 조선 바깥에서 벌어지는 큰 나라들의 힘겨루기 한복판에 놓여 있었던 거예요. 섬 주민들이야 그저 평소처럼 물질을 하고 밭을 갈고 아이를 키우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텐데, 그 일상 위로 낯선 군함과 낯선 말소리, 낯선 깃발이 오갔을 걸 생각하면 수달도 마음 한켠이 묘해져요. 역사책 몇 줄로 남은 사건이지만, 그 몇 줄 속엔 섬사람들이 실제로 겪었을 낯설고 불안한 나날이 함께 담겨 있을 거예요.
영국과 러시아 사이, 조선의 작은 섬
영국이 굳이 이 먼 동쪽 바다의 작은 섬까지 와서 눌러앉은 이유는, 사실 조선 때문이라기보다 러시아 때문이었다고 해요. 당시 영국과 러시아는 세계 곳곳에서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는데, 러시아가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는 걸 막으려던 영국이 거문도의 지리적 위치에 딱 주목한 거죠. 조선 입장에서는 억울하게도, 자기 땅이 남의 나라들 셈법 속 바둑판 위의 돌 하나처럼 다뤄진 셈이에요. 조선 정부는 이런 상황에 항의했고, 결국 여러 나라 사이의 외교적 논의를 거쳐 영국 해군은 1887년 거문도에서 물러났어요. 이 사건은 지금도 한국 근대외교사를 다루는 교과서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인데, 조선이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하기 어려웠던 근대 초입의 풍경을 참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작은 섬 하나에 큰 나라들의 지도가 겹쳐졌던 시간, 거문도는 그렇게 조선 근대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 🦦 수달삼산도에서 거문도로
거문도라는 이름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따라붙어요. 원래 이 섬은 삼산도 등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거문도 사건 무렵 조선에 왔던 청나라 제독이 — 흔히 정여창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져요 — 섬 주민들의 학식과 글솜씨에 크게 감탄해서, '큰 문장(文章)의 섬'이라는 뜻을 담아 이름을 바꾸도록 건의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답니다. 작은 섬 사람들이 큰 나라의 장수마저 감탄하게 할 만큼 글을 잘 지었다는 얘기, 그 자체로 마음이 뭉클해지지 않나요. 다만 이 이야기 속 인물과 정확한 시점은 전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남아 있어서, 딱 떨어지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섬에 오래도록 전해 내려오는 전설로 받아들이는 편이 맞을 것 같아요. 그래도 이름 하나에 이런 사연이 켜켜이 쌓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거문도를 바라보는 마음이 수달은 조금 달라지더라고요.

수달의 팁 · 거문도는 여수항에서 배로 꽤 오래 들어가야 하는 섬이라, 당일치기보다는 하루 묵어가는 일정으로 여유 있게 잡아보는 걸 추천해요. 섬까지 가는 길 자체가, 130여 년 전 이 바다를 오갔을 배들을 상상해보는 시간이 되어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