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들 낭만포차 가냐? 나는 여그 간다
아는 사람만 안다
여수 밤바다 하면 다들 이순신광장 앞 낭만포차거리부터 떠올립니다. 예쁘죠. 장범준의 '여수 밤바다' 한 소절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니까요. 노래 한 곡 덕에 전국에서 사람이 몰려오는 거리가 됐습니다. 근데 주말 저녁이면 사람 반, 사진 찍는 사람 반이라 국물 한 숟갈 뜨기도 전에 지칩니다. 자리 하나 잡겠다고 삼십 분을 서 있다 보면, 정작 바다는 언제 봤나 싶어요. 저는 그 줄 옆으로 살짝 빠집니다. 여수에서 50년 헤엄친 수달이, 관광객 동선 말고 현지인 동선을 순서대로 일러드릴게요.
관광객은 왼쪽, 아는 사람은 오른쪽
포차거리 초입에 서면 길이 두 갈래로 갈립니다. 대부분은 왼쪽 큰길로 빠져요. 조명 화려하고, 메뉴판이 사진으로 가득하고, 호객하는 이모님 목소리가 큰 그 거리 말이죠. 관광객에겐 편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오른쪽 골목으로 한 블록만 더 들어가면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간판도 소박하고, 플라스틱 의자에 낡은 파라솔, 그런데 자리마다 여수 사람들이 앉아 있어요. 퇴근한 뱃사람, 시장 상인, 동네 어르신들이 소주 한잔하는 자리입니다. 메뉴는 많지 않아도 하나하나 그날 들어온 제철 재료로 제대로 나옵니다. 큰길 가게가 '보여주는 맛'이라면, 골목 노포는 '먹여주는 맛'이에요. 사장님한테 '오늘 뭐가 좋아요?' 한마디 던지면, 그날 물 좋은 걸로 알아서 챙겨줍니다. 서대회무침이랑 새조개 샤브가 이 골목의 시그니처고요.
사진용 야경은 왼쪽, 진짜 여수 밤바다 기분은 오른쪽 골목.
— 🦦 수달안주 하나 시키고 바다 쪽으로
자리를 잡을 때는 바다를 등지지 말고 마주 보게 앉으세요. 그러면 건너편 돌산대교 불빛이 물 위에서 흔들리는 게 그대로 눈에 들어옵니다. 다리 조명은 해가 완전히 지고 나면 색을 바꿔가며 켜지는데, 그게 물에 비쳐 두 배로 반짝여요. 파도 소리 들으면서 새조개 하나 데쳐 먹으면, 그제야 여수 왔다는 게 실감 납니다. 대단한 걸 시킬 필요도 없어요. 안주 하나에 소주 한 병이면 충분합니다. 오히려 이것저것 많이 시켜놓고 정신없이 먹는 것보다, 하나를 천천히 즐기면서 바다를 오래 보는 게 이 골목을 제대로 쓰는 법이에요. 급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선 시간이 좀 느리게 갑니다.
술은 소주가 기본이지만, 서대회무침엔 막걸리도 잘 맞습니다. 초장의 새콤함이 막걸리의 텁텁함을 씻어주거든요. 안주가 짭짤하니 물도 넉넉히 시켜두세요. 여기 사장님들은 대개 인심이 후해서, 밑반찬 떨어지면 말없이 더 채워주십니다. 그런 정 때문에 한 번 온 사람이 단골이 되는 거예요. 관광지 물가에 익숙해진 분들은 '이 가격에 이렇게 준다고?' 하면서 놀라기도 합니다.


서대회무침이냐 새조개냐
이 골목의 시그니처는 둘입니다. 먼저 서대회무침. 서대는 여수 앞바다에서 나는 납작한 생선인데, 살을 새콤달콤한 초장에 무쳐 밥이나 국수에 비벼 먹습니다. 한 입 넣으면 막걸리가 절로 당겨요. 미나리랑 오이가 아삭하게 씹히고, 초장의 신맛이 소주 안주로도 딱입니다. 다음은 새조개 샤브. 끓는 육수에 새조개를 살짝만 담갔다 빼서 먹는데, 오래 익히면 질겨지니 '데쳤다' 싶을 때 바로 건져야 단맛이 삽니다. 서대는 사철 나지만 새조개는 11월부터 2월 사이가 제철이라, 그때 살이 통통하게 올라요. 처음이면 욕심내지 말고 둘 다 조금씩 시켜 나눠 먹길 추천합니다. 갓 지은 밥 한 공기에 반찬 몇 개만 곁들여도 상이 금세 꽉 차요. 여수 사람들이 왜 이 골목을 아끼는지, 한 상 받아보면 말 안 해도 압니다.
곁들이는 반찬도 허투루 보지 마세요. 여수는 돌산 갓김치가 유명해서, 어느 집이든 갓김치 한 접시는 기본으로 깔립니다. 알싸하게 톡 쏘는 갓김치 한 점이면 기름진 안주도 개운하게 넘어가요. 반찬 접시에 그날 담근 젓갈이 올라오는 집이면, 두말없이 물 좋은 집입니다. 이런 밑반찬 수준이 큰길 관광 포차와 골목 노포의 진짜 차이입니다.
그래서, 언제 가면 좋냐면
그래서 언제 가면 좋냐. 평일 저녁이 가장 여유롭습니다. 주말은 7시만 넘겨도 골목까지 붐벼요. 새조개가 목적이면 겨울에 오고, 그냥 밤바다 분위기를 즐기려면 아무 때나 와도 좋습니다. 팁을 하나 더 드리면, 해 지기 30분 전에 도착해 바다 쪽 자리를 먼저 잡으세요. 노을이 지는 것부터 돌산대교에 불이 들어오는 야경까지, 자리를 옮기지 않고 한자리에서 다 볼 수 있습니다. 그 사이에 안주 하나 데워 먹으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사진 몇 장 찍고 떠나는 관광지가 아니라, 한 저녁을 통째로 보내는 자리 — 그게 여수 밤바다를 제대로 쓰는 방법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딱 하루 저녁만 수달처럼 놀다 가세요.
수달의 팁 · 주말 저녁 7시 이후 돌산대교 방면은 지옥입니다. 차는 두고 걸어야 야경도 보고 주차 스트레스도 없습니다.